Gabriel Orozco, Seoul (2024)
가브리엘 오로즈코
2024년 9월 4일 ~ 12월 14일
화이트 큐브 서울의 이번 전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의 개인전으로, 그의 회화와 2021-22년 연작 ‘Diario de Plantas (식물 도감)’에 속한 드로잉 작업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연작 ‘식물도감’은 오로즈코가 일본 도쿄, 멕시코 아카풀코와 멕시코시티에서 수집한 식물을 노트의 지면에 판화 기법으로 기록한 습작 시리즈다. 이 연작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다. 작가는 도쿄에 거주하던 당시 주변에서 나뭇잎을 채집하는 일을 일상으로 삼았고, 이후 멕시코시티에서 차풀테펙 공원 재생 프로젝트의 총 책임을 맡아 그곳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이 활동은 마치 하나의 의례처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작가는 먼저 나뭇잎을 지면에 놓고 눌러서 그 자국이 남도록 하고, 같은 과정을 반복해 여러 잎사귀의 잎맥이 중첩되게 하거나, 잎의 흔적 위에 과슈, 템페라, 잉크, 흑연 등으로 드로잉을 하는 방식으로 식물에 대한 기록을 축적했다. 작가가 사용한 종이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물감을 잘 흡수해 뒷면까지 색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한 장 한 장 염색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은 곧 하나의 대화로 연결된다. 또한 작가는 여백에 일정한 번호 체계에 따라 작품의 고유번호와 제작일을 기입하고, 자신의 이름을 히라가나로 표기한 전통 인장으로 날인했다. 이처럼 인덱싱에 신경을 씀으로써 제작 과정을 일종의 일기처럼 기록하고, 작품이 탄생한 지리적 배경을 명시했다.
물감 얼룩, 뒤엉킨 실타래, 뫼비우스의 띠 등 작가가 손 가는 대로 그린 흔적은 잎맥의 해부학적 구조를 넘나들며 지면 위에 펼쳐진 식물의 지형과 소통한다. 이런 접근 방식에서 작가의 의도는 다양한 종을 식물학적으로 분류하고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기의 속성을 가진 연작을 통해 움직임을 경험적으로 고찰하는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움직임은 작가 자신이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는 거시적인 차원의 이동과, 잎맥의 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미시적 움직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가 그린 유연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문양과 나뭇잎 프린트의 구조화된 유기성이 펼치는 협연은 팬데믹을 계기로 맞닥뜨린 새로운 인간 대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게끔 한다. ‘인류 활동 휴지기(anthropause)’로도 불리는 이 시기에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위축됨을 경험하는 동시에 인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식물도감’ 시리즈의 여러 작품에서 오로즈코는 흙을 연상시키는 색채를 피하는 대신 진한 빨간색, 종이를 물들이며 번져 나가는 푸른색, 엑스레이로 찍은 듯도 하고 환영 같기도 한 흑백의 흔적 등으로 화면을 채웠다. 그래서인지 작품 21.I.22 (a) #15와 20.I.22 (b) #10(모두 2022년작)은 더욱 보는 이의 폐부를 건드린다. 한편, 작품 30.I.22 (a) #17 (2022) 속 식물은 청록빛 석호에 잠겨 있는데, 이와 같은 바다 이미지는 더 큰 크기의 금색 두방지나 캔버스에 그린 작품과 이 습작을 관통하는 연결고리다.
또한 작가는 각 습작의 제목 구성에서 볼 수 있듯 시간에 주목했다. 반면, 이번에 전시된 회화의 핵심 주제는 그려지는 대상인 동물이며, 이 점은 Lion Fish(라이언 피쉬)와 같은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배경에는 나뭇잎 프린트를 도식화한 형상이 펼쳐져 있고, 그 구조적인 형태와 오로즈코의 디자인이 협응하며 고조되는 복잡성은 오히려 구상적인 모티프를 더욱 생생하게 드러낸다. 붉은색, 흰색, 금색 등이 여백에 악센트를 더하는 동시에 물고기 등의 줄무늬 가시와 사자 갈기에 버금가는 지느러미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것은 무늬 있는 동물이라는 하나의 스펙트럼을 표상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어느새 지느러미의 구조적인 형태는 뒷배경에 서서히 융화되고, 그 자리에 독특한 나뭇잎 프린트들이 넓은 차양을 이루며 떠오르더니, 곧 템페라와 수채화 물감으로 얼룩진 수면이 차오른다. 오로즈코는 ‘두방지’라 불리는 즉 수묵화, 서예, 하이쿠 등 전통 문예에 사용되었고, 테두리에 금박을 씌운 일본 서화판을 애용했는데, 종종 작품 자체에 금박을 입히기도 했다. 이 기법은 보는 이가 움직임에 따라 금박에 의한 빛 반사각이 달라지며 작품이 살아 숨쉬게 하고 그 구성이 카멜레온처럼 계속 변화하게 한다.
이번 전시작의 도식적인 패턴에서 작가가 과거 연작에서 즐겨 사용했던 구조적 장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크기가 가장 큰 두 작품 Guapo Fish(구아포 피쉬, 2024)와 Warrior Fish(워리어 피쉬, 2024)의 역동성은 원심력과 몬드리안 풍의 색채 구획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Suisai (스이사이)’ 연작과 ‘Samurai Tree(사무라이 나무)’ 연작에서 돋보이는 색과 형태의 상호작용과 균형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두 시리즈에서 오로즈코는 체스 원리에서 착안한 규칙을 대비되는 색의 시퀀스와 원형 모티프에 적용함으로써 동적 리듬감을 창출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작품은 두 연작에 비해 더 세밀하고 정교하며, 구조적 장치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품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생명의 순환 즉, 탄생-성장-분해-화석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이 거치는 그 과정은 곧 예술 창작의 과정이기도 함을 오로즈코는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1962년 멕시코 베라크루즈의 할라파에서 태어나 도쿄, 멕시코시티, 뉴욕 등지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에는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고, 이어 2014년에는 아메리카 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문화공로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사우스 런던 갤러리 가든을 디자인했고, 현재 2024년 9월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인 멕시코시티의 차풀테펙 공원 재생 프로젝트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오로즈코의 개인전은 멕시코시티 로스 피노스 문화센터의 후아레즈 하우스(2020), 뉴욕 더 노구치 뮤지엄(2019), 뉴욕 바드 대학교 헤셀 미술관(2017), 미국 콜로라도의 아스펜 미술관(2016), 도쿄 현대미술관(2015), 스톡홀름 현대미술관(2014), 오스트리아의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2013), 에든버러의 프룻마켓(2013),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2012), 베를린의 도이치 구겐하임(2012), 런던의 테이트 모던(2011), 스위스의 쿤스트뮤지엄 바젤(2010), 뉴욕 MoMA(2009), 멕시코시티 미술관(2006), 독일 쾰른의 루드비히 미술관(2006),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 센터(2005),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2004), 워싱턴 DC의 허쉬혼 미술관과 조각 정원(2004),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2001), 멕시코시티 타마요 미술관(2001),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포르티쿠스 미술관(1999)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열렸다. 또한 여러 기관 및 비엔날레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현대미술관(2020), 로마 21세기 국립 현대미술관(2018), 상하이 와이탄 미술관(2018), 시애틀 미술관(2017), 프랑스 퐁피두-메츠 센터(2017), 일본 요코하마 미술관(2016),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2015), 도쿄의 모리 미술관(2015),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2014), UAE의 제11회 샤르자 비엔날레(2013), 제11회 하바나 비엔날레(2012),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미술관(2010), 캐나다 토론토의 더파워플랜트 현대미술 갤러리(2009), 리스본 미술관(2009), 멕시코시티의 국립 멕시코 대학교 현대미술관(2008),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현대미술관(2007),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2005),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2003), 독일 카셀 도큐멘타 11(2002), 미국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의 카네기 인터내셔널(1999) 등에서 작품이 전시되었다.
주요 작품
In the Gallery
Gabriel Orozco at White Cube Seoul
'Art itself is changing society all the time. That means the individual, or the collective, or the generation that is making art is always a reflection of their time, but also is transforming what has happened before.' - Gabriel Orozco
Publication
Gabriel Orozco ‘Diario de Plantas’
Published as two volumes in a first edition of 2,000 copies, this unique artist’s book compiles the ‘Diario de Plantas’ series (2021–22) by Gabriel Orozco. Related to a group of exhibitions, these volumes are dedicated to Orozco’s gouache, tempera, ink and graphite works on paper.
Gabriel Orozco
Visit Artist PageCreate an Account
To view available artworks and access pri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