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ru Nomata, Seoul (2024)
Minoru Nomata
映遠 – Far Sights
2024년 1월 12일 ~ 3월 2일
노마타는 자신의 작업을 ‘현실에 대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백일몽을 꾸는 것’에 비유한다.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4~5년이 소요되는데, 그가 그린 풍경에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본 듯한’ 기시감이 감돈다.
화이트 큐브는 일본의 미노루 노마타의 회화와 드로잉을 선보이는 ≪映遠 - Far Sights≫을 개최한다. 한국에서는 데뷔전이기도 한 이번 개인전에서 노마타는 숭고의 미학을 통해 인간의 생각, 혹은 인간이 속한 우주의 무한한 확장성을 탐구한다. 일본어로 ‘먼 광경을 투영하다’ 라는 뜻의 전시 제목의 앞부분,‘暎遠’에서 전달되듯이, 작가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낮은 수평선 위로 아찔하게 솟은 구조물들을 그렸고, 그 고요한 위용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지난 20여 년의 예술적 여정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시간, 장소, 관점의 불확실성을 내포한 채, 구체적인 실재와 몽환적 가상 사이를 오간다.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낸 구조물들은 정교한 건축미와 조형미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며, 어딘가 불안한 고독감을 풍긴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전자 음악의 분위기와 복고적인 미래주의풍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물들은 황량한 대지로부터 솟아났거나 허공을 부유하는 듯 보이고, 종종 연극의 무대 조명을 연상시키는 빛에 에워싸인다. 총안(銃眼) 형태의 창, 바람에 펄럭이는 상아색 돛, 금속성의 격자 구조물 등 디테일을 세밀하게 살린 예지적 이미지는 결말이 미완인 영화나 연극 무대의 배경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노마타는 자신의 작업을 ‘현실에 대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백일몽을 꾸는 것’에 비유한다.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4~5년이 소요되는데, 그가 그린 풍경에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본 듯한’ 기시감이 감돈다. 산업화 도시 도쿄에서 성장한 그의 작품 세계는, 정밀주의 화가 찰스 실러, 바우하우스의 거장 라이오넬 파이닝거, 옵아트의 착시효과, 상징주의와 아르데코의 유동적인 양식 등을 망라하는 도시 풍경화의 역사를 추적한다. 주기적인 해체와 재건을 반복하는 일본의 건축 과정을 반영하듯 노마타는 자신의 작품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공존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늘씬하게 솟은 타워, 정교한 설계의 철탑과 웅장한 고가는 양식과 아상블라주의 생성적 집약체로서의 ‘이름 없는 건축물’을 구성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숭고의 개념이다. 건축물의 웅대한 규모는 둘러싼 풍경의 광활함을 오히려 증폭시킨다. 1990년대 후반 노마타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아크릴화 연작에서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동양에 대한 긍정을 표상했다. 이처럼 드넓은 공간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는 시도는 자포니즘과 동양적 미학에 경도되었다고 알려진 벨기에의 상징주의 예술가 페르낭 크노프에게 영감을 받았다. 연작은 역으로 외부자의 관점에서 일본 문화를 고찰한다. 산업화가 진전된 도쿄에서 보낸 유년기의 추억, 특히 어린 시절에 관한 모티프로 자주 등장하는 동네 목욕탕에 관한 기억은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품 속 구조물과 보는 이 사이의 상당한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바로 추억의 힘 때문이다.
이미 철거되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건물들의 환영은 2010년대 중반의 연작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지워짐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들은 옛 텔레비전 방송에서 보던 고스팅(ghosting) 현상과 상통한다. 고스팅이란 여러 버전의 이미지가 송신되고 중첩되면서 시각적인 에코 효과가 생기는 과정을 뜻하며, 종종 텔레비전 전파 신호가 서로 다른 경로로 이동할 때 발생한다. 와 에는(모두 2014년작) 높이 솟은 구조물이 등장하고 그것이 뒤집힌 듯한 형태가 거울상처럼 구조물의 기저에 맞닿아 있다. 그 대칭성은 빛과 그림자, 공중과 수중, 과거와 미래 같이 상호대립 관계에 있는 상태를 연결해주는 다의적 해석을 낳는다. 구조물이 무형의 토대 위에 서 있기에 그 이미지는 공중에 떠 있는 요새나 꿈꾼 뒤의 잔상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시도는 대형 기구처럼 보이는 물체가 긴 밧줄로 땅에 묶여 있는 2018년작 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재기 발랄한 엉뚱함과 물리적인 전위를 결합함으로써, 악화일로로 치닫는 전지구적 위기에 대한 자신의 대응법을 제시한다. 인류 사회와 그 산물인 불기능적 가치 체계에 휘둘리는 세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다.
시리즈는 옛 거장의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와 부드러운 갈색 톤의 콩테 크레용으로 세밀하게 표현한 드로잉으로 이루어졌다. 이미지와 작품 제작 환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부모님 집 한 켠에 마련한 4㎡ 크기의 조촐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다도를 위한 공간 ‘차시츠(茶室)’와 그 물리적 한계를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환경에서 상상력이 내포한 무한한 가능성과 끝없이 이어지는 우주의 광활함이 조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노마타는 차실을 마천루로 그려내어,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되 하늘의 무궁함에 닿아 있고 세상 풍파에서는 멀어진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주제 의식의 기원을 잘 드러내는 소재를 선택하는 접근은 이전의 연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는 젯소를 칠한 합판에 색연필, 파스텔과 목탄을 사용해 중세 아이콘과 르네상스 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기법으로 표현한 연작이다. 한편, 수채화 물감을 이용한 최근작 에서는 섬세한 붓질로 선을 겹겹이 쌓아 올려 수많은 울타리와 트러스 구조들이 빼곡히 어우러진 형상을 구축했다. 직후에 작업한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규범이 되어버린 ‘편안한’ 비율을 버리고 길고 가느다란 형태의 화면을 택해 깎아지른 듯한 수직 구조물의 속성을 극대화했다.
식별할 수 있는 표지가 배제된 미노루 노마타의 고요한 풍경화는 우리가 속한 세계의 다양한 여건들을 펼쳐 보인다. 핵무기로 인한 파괴의 위험과 그에 대비되는 우주의 무한성에 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꺼질 줄 모르고 빛을 뿜어대는 인공조명과 꾸준히 뜨고 지는 일을 반복해온 태양의 에너지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의 작품에서 욕심을 채우려는 유한한 인간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절대적인 무한함에 맞서 허무한 몸부림을 한다.
미노루 노마타(b.1955) 도쿄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9년 도쿄예술대학을 디자인 전공으로 졸업한 후, 도쿄의 광고 대행사에서 5년간 근무했다. 본격적으로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그는 1986년 카즈코 코이케(Kazuko Koike)가 운영하는 대안적 갤러리 Sagacho Exhibit Space에서 ≪STILL – Quiet Garden≫ 전으로 데뷔했다. 이후 도쿄 메구로 미술관(1993),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2004), 일본 군마 현대 미술관(2023), 영국 벡스힐의 드 라 워 파빌리온(2022),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2023)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까지 도쿄의 조시비 예술디자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작품
작가 정보
화이트 큐브 서울 미노루 노마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장소를 그려내는 것을 특징으로, 노마타의 작품은 친숙하고 신비하며 신화적인 동시에 잊히지 않는 것들을 결합한다. 작가는 ‘회화는 도피할 수 있는 세계지만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Minoru Nom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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